A Review 2022-2026
A Review 2022-2026
박유준(박세희) PARK Yujun (PARK Sehee)
여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는 사람이 있다. 그의 걸음은 목적지를 향한 최단 경로와 빠른 속도감을 지향하지 않는다. 망설이고, 돌아보고, 이내 전진했다가도 다시 비껴나기 일쑤다. 그럼에도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단 한 걸음이라도 다른 곳에 선다. 《A Review: 2022-2026》은 2022년부터 2026년 사이 양은경이 제작한 네 편의 영상 작업─〈도채비 가로지르기 Crossing the Light〉(2022), 〈포옹 Embrace〉(2023), 〈몸과 말의 경계에서 Between Word and Body〉(2025), 〈있지만 없는 Visible Absence〉(2026)─을 다시 보고 말하고 생각한다.¹⁾
양은경 작업의 특징을 한 가지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싶다. 〈도채비 가로지르기〉는
[도채비 가로지르기, 전시 전경]
2022년 인천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²⁾ 에서 처음 선보여졌다.
[대구, 전시전경]
이 작업의 일부는 인천³⁾과 대구⁴⁾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도시 City Made of Lights〉(2025)의 배경이 되는가 하면,
[전주, 전시전경]
극장⁵⁾에서의 상영을 위한 조건을 갖추어 〈몸과 말의 경계에서〉(2025)로, 또 〈집짓기 Gathering into a Place〉(2026)라는 이름으로 전주⁶⁾의 블랙박스에서 선보여지기도 했다.
각각의 이미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의 양태를 변형하는데 능하다는 점이다.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전시장 환경에 따라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그러나 디스플레이는 작업(과 작업을 통해 보여지는 이야기들)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태도란 무엇인가. 양은경의 작업은 전방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과 기록에서 자꾸만 무언가를 찾아내고, 고민하고, 길어 올리면서, 단 한 걸음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간다. 자꾸만 덧대고, 분할하고, 공간을 바꾸면서 기어코 무언가를 발견해 낸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내적·외적 갈등이 있었을까.
양은경은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 근처에 있으면서, 당사자의 경험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 이를 조망하는 작가 자신 사이에 촉발되는 갈등과 성찰을 영상 매체를 활용해 표현하는 작가다. 그는 영상이 특정한 경험과 서사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영상이 무엇을 담고 또 무엇을 담지 못하는지(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탐구한다. 영상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신체, 목소리, 풍경 등)은 작품 안에서 완전한 형태로 고정되지 않는다. 때로는 비껴가고 또 서로를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말은 사라지고, 어떤 몸은 부분으로만 드러나거나 끝내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전시 때마다 시도하는 작품 내외부의 변화란, 작업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언제나 새롭게 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똑같은 이야기일지라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유도한다.
그런데 나는 이번 전시에서 그에게 평소의 고민을 잠시 접어두고, 그간의 작업을 오직 한 가지 타임라인 안에서 송출해 볼 것을 제안하였다. 아무런 변형도 꾸밈도 없이 그저 정직하게 하나의 주어진 조건 안에서 보여주기. 이를 통해 작업 그 자체에 관객들을 집중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나아가,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지 5년 차에 접어드는 시점에 이제까지 선보였던 작업과는 또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도 눈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이 작가의 무한한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바랐다.
2025년 양은경은 전주 팔복예술공장 레지던시에 입주하였다. 한창 작업과 전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그가 오랫동안 교감을 나누며 믿고 의지해온 인터뷰이 A씨가 더 이상 작업에 참여할 수 없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조심히 다룬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이 타인에 의해 편집·가공되어 영상이라는, 전시라는 매체로 유통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여러 비평·기사·도록 등의 지면에 소개된다면, 어느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공유할 수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정신질환을 예술 작업으로 풀어내는 과정에는 윤리적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질병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칫 ‘비정상’ 존재로 대상화하거나,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울 위험이 도사리기 때문이다.⁷⁾ 그런데 양은경은 일순간 “안도”했다고 한다. 팔복예술공장에서의 작업에 관한 글을 쓴 유은순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작업이라는 목적 없이 그냥 만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⁸⁾ 늘 A씨에게 가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작가와 참여자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교분을 이어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들어서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것이야말로 양은경이 자기 작업을 확장할 수 있는 논박 불가능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작업을 되돌아보고 한계와 보완점을 인식하며, 다음을 도모하는 도움닫기 지점을 마련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간 양은경의 작업은 어떠한 국면에 도달했을까. 끝내 붙잡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지는 않았을까. 이 전시는 다음 5년을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다 함께 지난 5년간의 궤적을 헤아려보자고 (감히)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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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이번 전시가 소개하는 양은경의 작품 정보는 다음과 같다.
· 〈도채비 가로지르기〉, 2022, 4분 8초
· 〈포옹〉, 2023, 5분 8초
· 〈몸과 말의 경계에서〉, 2025, 7분 59초
· 〈있지만 없는〉, 2026, 4분 40초
〈있지만 없는〉은 2채널, 나머지 작품은 1채널 영상이다. 모두 스테레오 사운드에 기반한다.
²⁾ 《도채비 가로지르기》, 아트스페이스 카고, 2022
³⁾《몸과 말의 경계에서》, 인천아트플랫폼 프로젝트 스페이스 2, 2025
⁴⁾《NOWHERE(Nowhere, Now here)》, 대구예술발전소, 2025
⁵⁾NEMAF 2025 시네미디어 큐레이팅 포럼 〈내부는 외부다, 미장아빔〉, KT&G 상상마당 시네마, 2025
⁶⁾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8기 결과보고전 《사라지는 순간, 남겨진 형상》, 팔복예술공장, 2026
⁷⁾박유준(박세희) (2026). 「조현병과 살아가기」. 『아트인컬처』, 2024년 12월호, 149쪽.
⁸⁾유은순 (2025). 「실패할 것을 알고도 해야만 했던 집짓기」.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비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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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유준(박세희)는 예술경영, 문화매개, 박물관/미술관학, 문화사회학과 문화예술정책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이론과 실제의 연결과 불화를 즐기는 연구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며 역사와 미술을 동시대의 언어로 풀어내는 큐레이터이자 친구들과 조직을 위한 편집자로 일한다. 다양한 공동체를 만들고 이끄는 조직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