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멍하게 있자, 반발력을 위해
더 멍하게 있자, 반발력을 위해
황재민 HWANG Jaemin
일단은 제목을 보자. 《문-멍》(2026)의 영어 제목 《Focal Portal》에서 먼저 눈이 가는 단어는 ‘focal’이다. 물론 그것은 ‘초점의’를 뜻하는 형용사다. 하지만 이와 함께, 기술철학자 알버트 보르그만(Albert Borgmann)의 개념 ‘초점 사물(focal things)’을 연상시키는 어휘이기도 하다. 고정균과 양은경은 전시를 만들며 초점 사물이라는 개념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해주었다. 나 역시 두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이 개념을 배웠다.
보르그만에게 기술이란 힘이자 서사다. 자연과 문화를 통제하는 힘이자, 고된 노동과 비참으로부터 인간의 삶을 해방하리라 말해주는 달콤한 약속이다. 기술은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풍요롭게 바꾼다. 하지만 여기엔 대가가 있다. 빠르게 따뜻해질수록 불을 지피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없게 된다. 쉽게 배를 채울 수 있기에 밥 짓는 노동을 모르게 된다. 기술 덕분에 인간은 세계로부터 점차 멀어진다.[1]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에게 기술이 인간의 상황을 결정짓고 하나의 효과로 탈주체화하는 얼굴 없는 골렘이라면, 보르그만에게 기술이란 지나치게 유능하고 친절하기에 나를 쇠약하게 만드는 자동화된 우주 함선의 기계 선장이다.
보르그만은 초점 사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초점적 실천(focal practices)을 통해 세계에 대한 관여(engagement)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점 사물이란 삶을 중심화하고, 질서 짓고, 방향 짓는 사물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삶을 삶답게 만드는 사물이다. 보르그만이 대표적인 초점 사물로 거론하는 것은 벽난로 다(마침 벽난로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가 바로 ‘focus’다). 벽난로를 이용해 집을 데우려면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우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살피는 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와 달리 중앙난방 설비는 따뜻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여분의 요소를 바닥 아래 매립해 감춘다.[2] 기술적 진보가 가져다준 편리함을 삶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초점 사물을 삶의 중심부에 재배치하는 것. 기술을 사용할 때 그것이 은폐하려는 세계와의 관계를 오히려 인지하는 것. 삶이 더 또렷해지도록 초점을 맞추는 실천의 필요성.
그렇다면 《문-멍》은 초점적 실천을 회복할 수 있는 초점적 장소가 될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전시에는 초점이 똑바로 맞은 작업도 있고 비뚤고 엇나간 사례도 있다. (보르그만이 경계한) 모호함과 주의산만의 징후가 가득하다. 어째서?
《문-멍》에서 ‘focal’에 대응되는 한국어 단어는 ‘멍’이다. 멍, 멍하다, 멍하니 있다.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 멍하니 있는 상태, 무기력한(lethargy) 상태란 자기 자신을 망각한 병증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급성 질환으로 여겨졌다.[3] 멍한 상태로 있다는 것, 그것은 세계를 향한 관여를 충실히 재활성화하고자 하는 초점적 실천과 달리, 오히려 관여를 끊어내고 삶과 앎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려는 죽음 충동적 행위로 보인다. 어째서? 이제 기술이 세계를 빈틈없이 포섭해 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벽난로가 초점적 실천을 기울일 수 있는 가정의 중심 장소였다면 이제 벽난로란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매개된 가짜 사물에 불과하다. 기술을 주변화할 수 있는 삶은 충만한 삶이라기보다는 값비싼 삶, 부르주아적이고 특권적 삶이 되어버렸다(당신도 실리콘밸리의 테크 억만장자들이 정작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는다는 뉴스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제 기술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넘어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우리를 살게 만들고 애착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를 소진시키고 마모시킨다는 잔인한 낙관 (로렌 벌랜트)의 역설은 기술이라는 물질적 배열을 통해 구체적 형태를 얻는다.
기술을 벗어나는 것도 기술을 주변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문-멍》을 안내하는 이 글에서 짚어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고정균과 양은경이 작가로서 카메라와 시각 이미지를 다루기도 하지만, 삶을 살고 일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을 다루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고정균은 사진을 촬영하고 양은경은 영상을 편집한다. 직업인이자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기술에 대한 이해는 필요조건이었다. 이때 둘이 다루는 기술이란 기어 문화(gear cultures)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문화적 장이기도 하다. 민족음악학자이자 레코딩 엔지니어인 엘리엇 베이츠(Eliot Bates)와 음악학자 사만다 베넷(Samantha Bennett)은 녹음 스튜디오 장비 등 전문 오디오 기술자의 세계를 민족지적(ethnography) 방법으로 탐구했는데, 여기서 기술적 대상을 물신주의적이고 쾌락적인 방식으로, 관음증적인 애착을 보이며 소비하는 기술문화에 기어 문화라는 이름을 붙였다.[4] 전문가화된 기술 지식과 ‘감식안(connoisseurship)’을 통한 구별짓기를 추구하는 경향을 갖는 이 하위문화적이고 취향문화적인 사회 구성체는 배제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위계를 나누고, 감식안을 인정받은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의 위계를 나눈다[5](중산층 지향적이고 남성 지배적인 헤게모니를 작동시킨다는 사실 또한 언급해야 한다).[6] 기어 문화는 카메라 장비 문화와도 맞닿는다. 영화와 영상 제작은 물론이고, 무빙이미지 등 급진적인 이미지 제작 실천의 뒷면에도, 예외 없이 유독한 기어 문화와의 암묵적인 결탁이 있다. 양은경의 말을 빌리자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힘이 세다. 더 비싸고 더 좋은 카메라를 들고 있으며 관련 지식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힘이 강할 것이다. 이처럼 기술은 언제나 페티시즘의 대상, 하위문화적 즐거움이 작동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돈을 모아 새로운 카메라를 사는 것은 즐겁다. 새로운 핸드폰을 사고 그 기능을 작동시키는 과정은 즐겁다. 우리를 소진시키고 우리를 죽이는 것으로부터 쾌락과 즐거움이 발생할 때, 그 복잡한 정동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고정균과 양은경, 두 사람 모두 ‘뒷문으로 들어온 것 같다’는 표현을 쓴 적 있다. 전공으로 배우거나 자격을 검증받은 적 없이 덜컥 일부터 하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주류 기어 문화에서 비켜날 수 있었고, 기술이라는 사회문화적 구성체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작가로서 작업을 이어 나가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문-멍》은 정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샛길을 통해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두 ‘측면적’(벌랜트) 주체가 무언가를 공모하기 위한 장소다. 고정균과 양은경은 특정한 기술에 의해 숙련된 신체와 시각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이해 위에서 기술을 비뚤게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밥벌이할 때는 지워야 하는 노이즈를 일부러 증폭시킬 때, 전문가다운 결과물을 위해 제거해야 하는 오류가 작업의 핵심이 될 때, 그때 문득 찾아오는 위반적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문-멍》은 초점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초점화하고 초점적 실천을 재정식화하기 위한 측면적 ‘포털(portal)’이 된다. 나는 이 글의 마감에 늦고 있고 지금은 꽤 늦은 시각인데, 고정균과 양은경은 갑자기 메시지를 주었다. “오늘도 되게 재밌는 거 많이 했습니다.” 샛길로 들어온 사람들이 샛길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한다. 그때 동시대 미술 장 자체가 샛길이 된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 우리를 죽이려 할 때, 우리를 죽이려 하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즐거움을 느낄 때, 어쩌면 중요한 것은 오직 즐거움, 이전과 조금 다른 형태의 즐거움일지 모른다. 그러니 《문-멍》을 재미있게 보다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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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lbert Borgmann, Technology and the Character of Contemporary Life: A Philosophical Inquir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 chap. 8, "The Promise of Technology," EPUB.
[2] Borgmann, Technology and the Character of Contemporary Life, chap. 23.
[3] Tung-Hui Hu, Digital Lethargy: Dispatches from an Age of Disconnection, MIT Press, 2022, vii–viiip.
[4] Eliot Bates and Samantha Bennett, Gear: Cultures of Audio and Music Technologies, MIT Press, 2025, 8-9p.
[5] Bates & Bennett, Gear, 37-38p.
[6] Bates & Bennett, Gear, 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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