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Embrace
포옹 Embrace
돌아오는 것은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떤 영웅 이야기에서도 어떤 영화에서도 사람들은 떠나고 고향을 향해 돌아온다. (물론 가끔은 돌아오지 못한다.) 영화는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역에 도착한다. 서울역 바로 옆에는 여전히 신발 가게들이 줄줄이 있다. 도착한 사람들에게 신발이 필요했던 것일까.
플랫폼과 꿈
플랫폼. 떠나는 시간과 돌아가는 시간이 뒤섞인다. 뿌리를 흉내내는 발. 누군가는 고향으로 누군가는 어떤 세계를 향한다.
꿈에 자주 나오는 철로가 있다. 어느 날 꿈에서 세상은 끝이 났고 우리는 살기 위해서 앞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두고 온 기분에 모두가 달리는 방향의 반대로 철로를 가로질러 뒤로, 계속해서 뒤로 달려갔다. 앞으로 달려가던 사람들의 반대로, 반대로 뛰다보면 어느 순간 앞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반대로 달리는 감각이 사라진다. 나는 그 곳에서 쓰레기를 뒤지고 있던 아빠를 발견한다.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듯, 그 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 나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나의 아버지의 이름은 ‘양탁희’. 그러나 그의 이름은 나의 이름인 ‘양은경’ 이었다. 그는 이름만을 묻는 나를 이상하게 보더니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사라졌다.
이 꿈이 오랜 시간동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처럼 몸을 돌려서 시간의 뒤로, 뒤로 향해 갔다. 그곳에서는 변했지만 변한 것 없는 수원의 공간들과 김순득님이 있었다. 그때의 꿈이 무엇이었을까. 그때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그를 가엾이 여기지 않는 마음과 그의 이름.
포옹
떠나는 몸에 실려 있는 가느다란 뿌리.
고개를 돌리고 몸을 움직여 돌아본 곳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남자는 가족이 되어준 적이 었다. 집이 없어서 떠난 적이 없고, 떠난 적 없으니 돌아올 곳이 없는 이야기. 경험한 적 없는 집짓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떠나는 몸의 뿌리는 숨을 쉬기 위해서 바깥으로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사람은 내장을 쑥쑥 키우며 내(內)성장을 하고 식물은 줄기를 쑥쑥 키우며 외(外)성장을 한다. 내부에 지탱해줄 뿌리를 찾지 못한 몸은 건물을 뒤덮고 서로 다른 물체와 식물들을 감싼다. 종이 다른 나무가 서로를 맞대고 있는 장면을 마주 한다. 포옹.
손님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이곳에서 죽어도 될까요?” / “객사의 원래 뜻은 손님으로 죽는 것”
나는 객사하리라 굳게 믿었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엉겨있는 식물의 장면에서, 황량한 길거리에 서로 다른 의자들이 하나의 공간을 만들듯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 장면에서 그때의 이름을 떠올린다.